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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순간/산티아고 순례

사람들은 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까

by JOY's Story 2025. 10. 25.
별처럼 빛나는 두 가지 역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별들의 길, 산티아고 순례길의 역사 
  • 821년 산티아고 순례길의 시작
  • 198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hn Paul 2) 산티아고 순례길 방문
까미노(Camino)의 시대를 여는 역사적 첫걸음의 순간

 

산티아고 순례길(카미노 데 산티아고, Camino de Santiago)813년경에 예수의 제자, 성 야고보(산티아고)의 유해가 갈리시아에서 발견되었다는 전승에서 출발한다. 이리아 플라비아(Iria Flavia)라는 작은 마을에 은둔자 펠라요(Pelayo)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별의 인도(Campus Stellae)를 따라 한 장소에 이르는데, 바로 그곳에서 야고보의 무덤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순례길의 종착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가 별들의 들판으로 불리는 이유이다. 지금도 순례자들은 별빛의 길을 따라 걷고, 그 길을 별들의 길(Camino de las Estrellas)이라 부른다.

왕의 순례, 알폰소 2세, 최초의 순례자

 

821, 그 소식을 듣고, 당시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군주, 알폰소 2(Alfonso II el Casto)는 오비에도(Oviedo)에서 산티아고까지 직접 걸어가서 사도의 무덤을 확인한다. 왕의 순례로 불리는 기록상 산티아고 순례길의 역사적 첫걸음이다. 당시 스페인 상황은 남쪽에 이슬람 세력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북쪽의 기독교 왕국들은 고립되어 있었다.

 

알폰소 2세의 순례는 신앙의 불씨를 다시 일으키는 행위였다. 유럽이 다시 걷기 시작한 순간을 뜻한다. 야고보의 무덤은 스페인 기독교의 상징이 되었고, 왕과 농부, 수도자와 방랑자가 이 길을 걸으며 기도했다. 순례자의 행렬은 유럽의 문명과 신앙을 잇는 혈관과도 같았다.

 

교황 인노첸시오 2(Pope Innocent II, 1130~1143년 재위) 당시, 교황청은 산티아고를 로마, 예루살렘과 함께 세계 3대 성지로 공인한다. 또한, 순례 문화의 형성과 기부 그리고 성지 건설이 촉진되었고, 1993년에 유네스코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바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지정 연도 1993년
지정 명칭 “Routes of Santiago de Compostela: Camino Francés and Routes of Northern Spain"
지정 이유 * 중세 유럽 순례 문화의 대표적 사례로 인정
* 순례길을 따라 발달한 도시, 교회, 수도원, 다리, 숙소 등 자연환경과 지역사회, 그리고 건축물에 대한 문화적, 역사적, 예술적 가치 인정. 보호를 위한 관리 정책을 마련했다는 의의가 있다.
* 다양한 나라의 순례자들을 통한 종교, 문화적 교류

 

오늘날 순례자들에게 주는 울림

 

198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John Paul 2)는 직접 순례자의 옷차림으로 산티아고를 방문했다. 그리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오늘, 순례자 요한 바오로로서 여기에 왔습니다.”

유럽은 이 길 위에서 자신을 다시 발견해야 합니다.”

 

821년의 첫 순례가 남긴 울림의 연장이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1989년 세계 청년대회(World Youth Day)를 산티아고에서 개최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희망의 길로 알려지게 되는 계기였다. 교황은 전통적으로 세계 가톨릭의 수장이지만, 교황의 옷을 벗고, 평범한 순례자의 한 사람이 되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본질인 겸손, 회개, 화해, 그리고 인간의 평등과 맞닿아 있다.

 

순례자들에게 까미노의 의미는 무엇일까.
 
  • 변화(Transformation)
  • 느림(Slow)
  • 단순함과 만남(Minimal and community)
  • 상실의 치유(Healing of loss)

순례자들은 각자의 생각, 문화, 언어, 연령, 성별, 취향 등이 모두 다르다. 의견은 다양하지만 공통된 키워드는 있다. “변화(Transformation)”, “느림(Slow)”, “단순함과 만남(Minimal and community)”, “상실의 치유(Healing of loss)” 등이다. 일상으로부터 떨어져 자신과 타인 그리고 자연을 새롭게 마주하는 순간, 잃어버렸던 나를 다시 만나서 부둥켜안고 실컷 울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저 가진 것이라고는 배낭뿐인 순례자가 되어 어떤 편견도 없이 웃고, 울고, 얘기하면 좋겠다. 광활한 자연 속에서 하염없이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벌거벗은 심정이 되지 않을까. 인생의 밑바닥에서 단말마처럼 외쳐보고 싶다.

 

“No Pain, No Gain, Sin Dolor No Hay Gloria”

 

과연 위대한 변화가 필요한 것일까. 우리에게 필요한 변화는 단절과 결핍 그리고 욕망을 대하는 삶의 태도이다. 실패와 아픔을 어떻게 마주하고 살아왔는지. 영광을 얻기 위해 고통을 견뎌보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고통을 당당하게 마주하는 영광, 그 빛나는 순간을 위해 걷기를 소망한다.

 

다음 글  나는 왜 2025년 12월 31일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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