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의 상징 : 가리비, 노란 화살표, 산티아고의 십자가, 지팡이와 조롱박, 와인
- 왜 순례자들은 배낭에 가리비를 달고 다닐까.
- 왜 순례자들은 노란 화살표를 보면서 울컥할까
- 산티아고 순례길 유튜브 영상을 보다 보면, 왜 시원한 맥주, 와인이 생각날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한 접시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오랜 세월 순례자들이 만들어온 상징(symbol)들이 있다. 순례자들이 간직했던 길 위의 철학이 담긴 물건들이다. 산다는 것과 살아낸다는 것. 그냥 숨만 쉬고 살아도 사는 것이다. 그러나 소중한 것을 지키고 산다는 것은 힘겹게 살아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냥 지나치는 것에도 의미를 담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른다.
왜 순례자들은 배낭에 조개껍데기를 달고, 왜 그들은 캄캄한 길에서 빛나는 노란 화살표 하나에 울컥하는지, 해 뜰 무렵 자꾸만 뒤돌아보게 되는 뭉클함, 순례길에서 나무 막대기 하나가 얼마나 힘이 되는지를 안다는 것. 누군가에게는 고작 뜨거운 국물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비바람에 지친 속을 달래는 오늘 가장 맛있는 수프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외면하듯 지나쳤던 물 한 모금, 불빛 한 조각에도 감사하는 법을 배운다. 소홀했던 것을 자꾸만 돌아보게 된다는 말은 아닐까.
1. 가리비 조개껍데기(La Concha, Scallop Shell)는 순례길의 대표적 상징이다.
순례자들은 가리비를 배낭이나 모자, 지팡이에 달고 걷는다. 실제로 중세 시대에는 산티아고 대성당 근처 해변에서 채취되는 조개껍데기를 가져오는 것이 순례길을 완주했다는 증표이기도 했다. 가리비의 선형 무늬는 산티아고 길처럼 여러 방향에서 모여 하나의 중심으로 이어진다. 조개껍데기는 순례자에게는 필요한 만큼의 음식이나 물을 담는 그릇이기도 했다. 겸손과 나눔을 상징한다.
2. 노란 화살표(La Flecha Amarilla)는 길을 잃은 자를 위한 빛을 상징한다.
순례자들이 길 위에서 가장 많이 마주치는 표지이다. 1980년대, 스페인의 수도사 엘리아스 발리냐(Elias Valiña) 신부가 순례길 복원을 위해 직접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시골 마을 담벼락, 돌담, 전봇대에 페인트를 칠하며 길을 연결했다. 노란 화살표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종착지까지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순례길에 또렷하게 남아 있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노란 화살표 하나쯤 남기는 삶이면 좋겠다. 우리의 자녀들이 인생의 길을 잃었을 때, 길이 막힌 곳에서 주저앉을 때, 노란 화살표가 되어주는 사람을 만나면 좋겠다.
3. 산티아고의 십자가(Cruz de Santiago)는 신앙과 헌신의 기사도를 상징하는 표지이다.
칼끝이 꽃잎처럼 갈라진 붉은 십자가는 중세 시대에 순례자와 기사들이 옷이나 깃발에 새겨, 자신이 신앙의 수호자라는 사실을 나타냈다. 칼은 신앙을 지키기 위한 결단과 헌신, 붉은색은 순교자 야고보의 피와 사랑의 열정을 의미한다. 지금도 산티아고 대성당 제단이나 순례자의 여권에 찍히는 도장의 문양으로 쓰인다. 순례자들은 가슴에 붉은 십자가 하나를 품고 사는지도 모른다. 내가 지켜야 할 소중한 것들을 지키겠다는 각인처럼.
4. 순례자의 지팡이와 조롱박(Bordón y Calabaza)은 길 위의 동반자를 상징한다.
지팡이는 단순한 보행 도구가 아니라, 지친 몸을 의지하는 신앙의 지팡이이며, 믿음의 버팀목이다. 먼 길을 나서는 순례자들에게 꼭 필요한 물건 중의 하나이다. 지팡이 끝 고리에는 조롱박을 매달아서, 필요한 만큼만 채우고, 나누는 절제의 삶을 실천한다. 조롱박에 담은 물 한 모금의 소중함을 안다는 것. 그가 왕이거나, 농부일지라도 없어서는 안 될 생명수. 때로는 타는 목마름에 주저앉은 순례자의 목을 적셔줄 수 있는 오아시스. 나는 순례길에서 무엇을 의지하고, 무엇을 얼마만큼 채우고 살아야 하는 가를 묻는다.
“No Vine, No Camino.”
순례길을 ‘술례길’로 부르는 이유.
5. 와인은 순례자들의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달콤한 휴식이다.
순례길을 걷다 보면 곳곳에 순례자들의 낙서가 있다. 나름의 감동이 있고, 지혜가 있으며, 해학이 있다. 그중에 “와인이 없으면, 순례길도 없다.”라는 말은 압권이다. 영국의 리비에라 트래블(Riviera Travel)의 발표에 따르면 2025년 유럽 최고의 맥주 도시는 스페인 마드리드이다. 마드리드에만 23개의 양조장이 있고, 300개가 넘는 술집과 음식점, 다양한 맥주 축제가 있기 때문이다.
순례자들은 드넓은 밀밭을 지나고, 끝없는 포도밭을 걷고 난 후에 맥주나 와인 한 잔으로 그날의 피로를 털어냈는지도 모른다. 순례자들에게 무료로 물과 와인을 제공하는 이라체 수도원이라는 곳도 있다. 스페인 북부 지방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프랑스 길은 지역 모두가 와인 생산지로 유명하다. 특히 와인의 성지라 불리는 로그로뇨에 있는 리오하(La Rioja)는 레드 와인으로 유명한 지역이고, 갈리시아 지역에 들어서면 스페인 최고의 화이트 와인을 만날 수 있다. 순례자들이 와인 한잔을 나누는 시간, 그날의 기억이 포도주가 익어가는 냄새처럼 오래 잊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순례자의 일기장에는 무엇을 쓸까
생장에서 배낭에 가리비를 매다는 순간, 나는 순례자임을 말한다. 단 한순간도 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잊지 않겠다는 기도. 때로는 길을 잃고, 길을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서, 나도 누군가의 노란 화살표가 되어 보는 것, 또한 멋진 일이 아닐까. 그리고 사는 동안, 또렷하게 새기고 살아야 하는 것들. 붉은 십자가 문양처럼 소중한 것을 지키며 살겠다는 믿음과 열정의 수호자로 살겠다는 다짐이다.
어스름한 새벽, 지팡이를 짚고 나서는 길 위의 자각, 자신이 얼마나 작고, 연약한 존재인지 안다는 것, 지치고, 목마른 순례자의 생명줄에 고마움을 잊지 않아야겠다. 하루를 마치는 달콤한 위로, 내게 허락하신 오늘의 기억을 오늘도 일기장에 또박또박 써 내려가야겠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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