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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순간/산티아고 순례

산티아고 순례길 금지된 아름다움

by JOY's Story 2025. 11. 8.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왜 낙서가 많을까.
사람들은 왜 낙서를 할까. 낙서의 심리학, 낙서에 담긴 존재와 고독, 공감과 연대

 

순례길의 낙서는 모순적이다. 금지된 아름다움.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 길에는 유명한 낙서 천국이 있다.
낙서에 담긴 감동과 용서, 위로와 고백 그리고 기도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라. Ultreia et Suseia.”

 

“예술은 불안한 자들을 편안하게 하고, 편안한 자들을 불안하게 해야 한다.
Art should comfort the disturbed and disturb the comfortable.”

 

낙서 하나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인물, 자칭 예술 테러리스트, 뱅크시의 말이다. 낙서는 불안한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일까, 편안한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일까. 대한민국의 유명 관광지는 낙서 천국이라는 기사도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도 낙서판이다. 순례자들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때로는 응원이나 해학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의 사연을 읽는 즐거움도 있다. 반면에 무분별한 낙서는 소중한 문화유산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스페인 지방 정부는 길 위의 낙서를 정기적으로 지우고, 청소한다. 순례길의 낙서는 그래서 모순적이다. 금지되어 있지만, 동시에 아름답다. 정리되어 있지 않지만, 진실하고, 정갈하다.

“부엔 까미노, Buen Camino!”

 

순례자들의 인사를 낙서로 남긴 낙서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 보면, 담벼락, 전봇대, 표지판, 알베르게의 벽 모퉁이, 오래된 벤치에도 낙서는 있다. 노란 화살표 옆에, 벽돌 틈에, 표지석에 적힌 낙서는 자신에게 그리고 나와 같이 길을 걷는 타인에게 보내는 응원이다. 혼자가 아니라고, 누군가도 이 길을 걸었다는, 힘내라는 의지의 표현이다. 순례길은 인생이라는 말. 나를 용서하는 길이고, 나를 사랑하는 길이다. 순례길의 낙서는 오늘의 순례자와 내일의 순례자를 이어주고, 포기하지 말라는 미완의 사연을 위로한다.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 길에는 유명한 낙서 천국이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낙서하기 좋은 곳이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 낙서 포인트 베스트 5

 

1. 프랑스 생장 출발의 벽(Saint-Jean-Pied-de-Port)

“Pray for me”, “Buen Camino!”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 길의 출발점, 프랑스 생장의 순례자 사무소 인근 돌담과 성문 주변에는 순례를 시작하는 이들의 다짐이 빼곡히 적혀 있다. 순례자가 된 자신의 이름이 적힌 낙서들이 많다.

 

2. 철의 십자가 아래 쌓인 돌에 적힌 낙서(크루스 데 페로, Cruz de Ferro)

“Forgive”, “Gracias”

아스테르가(Astorga)와 폰세바돈(Foncebadón) 사이, 고도 1,504m 지점이다. 순례자들은 각자의 고향에서 가져온 돌 위에 짧은 글을 써서 십자가 아래 놓고, 두 손을 모은다. 누군가는 자신의 소중한 물건에 쪽지를 남기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남긴다. 순례자들의 기도가 담긴 낙서들이다.

 

3. 오 세브레이로(O Cebreiro) 마을

“I believe again”

갈리시아 지방 입구에 있는 고도 1,300m의 산악 마을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상징 노란 화살표가 만들어진 곳이기도 하다. 9세기에 건축된 산타 마리아 왕립 성당에서 일어났던 성체 기적의 전설이 전해지는 이유 때문인지, 신앙이나 기도가 담긴 낙서가 많다. 성체 기적은 성찬의 빵과 포도주가 예수의 살과 피로 변하는 기적을 말한다.

 

4. 라바칼라(Lavacolla) 계곡

“I made it!”

산티아고 순례길의 종착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를 약 10km 남긴 지점이다. 전통적으로 순례자들은 이곳 계곡에서 자신의 몸을 씻고, 산티아고에 도착한다. 벽이나 표지석에는 완주를 앞두고, 자기 내면을 정화하는 순례자들의 염원이 남아 있다.

 

5.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광장, 프라사 오브라도이로(Praza do Obradoiro)

“We did it!”, “Gracias a Dios”

산티아고의 상징 대성당 앞 광장 바닥이나 벽 귀퉁이, 기둥 등에는 작은 종이나 돌에 순례를 마쳤다는 감격이 적혀 있다. 순례자의 눈물이 젖은 쪽지에는 우리가 해냈다는 감동과 환희가 느껴진다.

 

사람들은 왜 낙서를 할까. 낙서의 심리학

 

존재의 흔적

순례길의 낙서는 단순한 욕망의 배출이나 단순히 기억을 남기려는 순간의 일탈이 아니다.

나는 이 길을 걸었다는, 한 인간의 존재에 대한 선언이고, 증거이다. 낙서는 살아 있다는 증거를 남기려는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 4만여 년 전, 구석기 시대의 동굴 벽화처럼 누군가에게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일이다.

 

고독한 독백과 감정의 토로

순례자는 고독하다. 홀로 걷는 동안 쌓이는 슬픔과 감사, 후회와 용서의 감정들이 한 단어, 한 문장의 낙서를 통해 비워진다. 인간은 모두 약하고, 부족하며, 흔들린다. 너는 혼자가 아니라는, 나도 너와 같은 길을 걸었다는 공감이다. 자신에게, 또 낯선 누군가에게 보내는 위로와 다짐이다.

 

익명성에 담긴 진심

낙서는 도대체 누가, 왜 했는가를 밝히지 않는다. 때로 언제라는 단서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익명성이 주는 위로는 누군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다는 공감이다. 날 것 그대로의 심정을 토해놓은 한마디에 깊은 위로를 받는 이유이다. 혼자가 아니라는 연대감이다. 누군지도 모르는 이가 낙서를 통해 안아주는 위로이다. 낙서는 지친 순례자의 마음과 몸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 있다.

 

공감과 연대에 대한 갈망

때로 낙서는 고난을 통과하는 기도이고, 용서의 선언이며,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의식이다. 길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낙서는 그 변화의 흔적을 남긴다. 다시 태어나는 상징으로 남는다.

사람의 기억은 사라진다. 낙서도 세월이 흐르면서 희미해지고, 지워진다. 그러나 사라져도 남는 것이 있다. 잊는다 해도, 잊히지 않는 마음의 기억이 있다. 누군가와 연결되기를 갈망했던 본능이 낙서로 남는다. 누군가를 위로하고, 응원하는 낙서를 남기면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다.

 

나도 예술 테러리스트가 되어 보자.

 

“No pain, no Camino.” 고통 없이는 순례도 없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나타내는 명문장이면서도, 누군가 길 위에 선명하게 끄적인 낙서이다. 순례길의 낙서에는 스페인어, 영어, 독일어, 이탈리어, 프랑스어 등 다양한 언어들이 있다. 순례자들은 낙서에서 언어가 아닌, 감정을 공유한다. 뜻도 알 수 없는 문장에 감동과 연민을 느낀다. 국경과 문화, 성별과 나이를 넘어서는 인류애의 연대이다. 혼자 와도 함께 걷는 곳, 혼자 오더라도 홀로 걷지 않는 곳. 순례길에서 나는 누군가를 만나고, 때로는 함께 걸을 것이다. 나도 그곳에서 돌 하나를 던지고, 담벼락 어딘가에 낙서한다면, 나는 어떤 낙서를 남길 것인가. 나와 타인을 이어준 흔적이 남아 누군가에게 닿게 된다면, 그 사람을 만나고 싶다.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라. Ultreia et Suseia!”

 

*출처 https://www.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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