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순례자를 위한 미사
산티아고 대성당에는 거대한 향로가 있다.
순례자들이 꼽는 가장 감동적인 순간
인간은 언제 감동하는가. 여행의 감동
감동의 순간, 감동하는 사람, 감동을 주는 사람. 인간은 언제 감동할까.
순례자들이 꼽는 가장 감동적인 순간
삶이 흔들리던 순간마다, 나를 붙잡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감동. noun, 크게 느끼어 마음이 움직임. 네이버 사전 정의이다.
| 感 느낄 감/한할 감 부수 心 총획 13획 1. 느끼다 2. 감응하다(感應--), 느낌이 통하다(通--) 3. 감동하다(感動--), 마음이 움직이다 |
動 움직일 동 부수 力 총획 11획 1. 움직이다 2. 옮기다 3. 흔들리다 |
삶을 다시 사랑하게 만드는 힘
감동은 무엇인가에 의미를 느끼고, 마음이 움직이는 경험이다. 마음의 결이 심하게 흔들리는 일이다. 말로 다할 수 없는 슬픔과 기쁨, 감사와 경외를 동반한다. 감동은 단순한 심리 상태로 머물지 않는다. 눈물이 나고, 심장이 뛰며, 소름이 돋기도 한다. 뇌에서 도파민, 옥시토신, 세로토닌이 동시에 분비되는 몸의 즉각적인 반응이다. 살아 있음을 느끼고, 살아갈 세상에 대한 믿음, 보이지 않는 진실과 마주하는 용기이다. 인간이 느끼는 가장 고귀한 감정, 삶을 다시 사랑하게 만드는 힘이 감동이다.
감동이 일어나는 조건
1. 진정성(Authenticity)
인간은 거짓 없는 마음, 계산되지 않은 행동에서 꾸미지 않는 진정성을 느낀다. 누군가의 선한 행동, 진심 어린 말 한마디, 예술가의 진솔한 표현이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이유이다.
2. 공감(Empathy)
감동은 혼자서 생기지 않는다. 영화 속 한 장면일지라도, 타인의 고통이나 기쁨에 내 마음이 닿는 순간, 마음을 울린다. 내가 타인의 입장이 되는 공감의 연결 때문이다.
3. 초월(Transcendence)
감동은 절망 중에 가느다란 희망이 보일 때, 힘든 일을 기어코 해냈을 때 찾아온다. 산 정상에 올라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전율하는 감정이 감동이다. 한 인간으로서의 초라함과 위대함이 교차하는 감정이 감동이다.

순례자들이 꼽는 가장 감동적인 순간
보타푸메이로 (Botafumeiro)는 마치 춤을 추듯 흔들린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느끼는 감동은 웅장한 장면이나 사건만이 아니다. 순례자들은 단지 걷고, 먹고, 뜨겁게 사랑한다. 내가 걸었던 길을 기억한다. 눈과 바람, 비에 젖었던 순간, 함께 걸었던 낯선 친구들, 그리고 힘든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우리. 감동은 인간의 삶을 깊이 있게 만든다. 감동을 잃어버린 삶은 삭막하고, 날 것 그대로의 생명력이 없다. 한 번이라도 몸뚱아리 하얗게 태우는 연탄처럼 살아본 적이 있는가. 가슴 뛰는 일을 잃고 살지는 않는지, 나에게 묻는다. 나는 누군가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는가.*
장소가 주는 감동
철의 십자가(Cruz de Ferro)에 도착한 사람은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순례길의 절반 약 400km를 지나는 지점이다. 순례자들은 거친 숨을 토하며 산 정상에 올라, 십자가 돌 언덕에서 하염없이 기도하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무겁게 짊어지고 살았던 삶의 무게를 내려놓는 화해. 순례길에서 마주했던 고통과 영혼의 변화가 시작되는 곳. 순례길은 지도 위에 점들을 잇는 선이 아니라, 삶의 연민과 감동이 쌓여서 만든 철 십자가 같다.
별이 빛나는 들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마침내 800km를 걸어서 대성당에 도착하는 순간, 광장(Plaza del Obradoiro)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 순례자들의 마음을 요동치게 한다. 울음을 터트리는 이, 말없이 성당의 첨탑을 바라보는 이, 서로 부둥켜안고 완주의 기쁨을 나누는 사람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힘들어했던 과거를 마주하는 울림, 내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순응일 것이다. 고통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고통을 당당히 마주하는 법을 가르친다.
자연이 주는 감동.
순례자들은 해 뜰 무렵의 풍경과 색감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새벽 미명의 알베르게 문을 열고 나서는 순간, 순례자들은 쏟아지는 별빛을 보며, 자신이 별의 길(Camino de las Estrellas)에 서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걸으면서 꽃과 들판의 색깔이 바뀌고,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는 전율이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하늘을 보며 살까. 꽃 한 송이, 이름 모를 들꽃에 가까이 다가간 적이 있을까. 새들의 노랫소리에 조용히 눈을 감을 줄 아는 법을 언제부터 잊었던 것일까.
사람이 주는 감동
직업, 나이, 국적, 언어 아무것도 모르는 낯선 이가 아무 이유 없이 건네는 손길에 감동하기도 한다. 환한 웃음으로 물 한 모금, 과자 한 조각, 나무 지팡이 하나를 나눠줄 때 순례자는 가슴 찡한 전율을 느낀다. 순례길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은 사람이다. 누군가는 그 길에서 만나 결혼하고, 누군가는 지독한 그리움을 견딜 수 없어 다시 그 길을 걷는다. 힘든 순간을 함께 했다는 위로, 서로를 의지하며 헤쳐나갔던 인연에 대한 경외. 인종과 문화, 언어와 종교를 초월해서 이어진 유대와 공감은 한 인간을 비로소 순례자로 만드는지도 모른다.
아파트 7층 높이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향로
순례를 마친 사람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는 감동의 순간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고, 다시 살아갈 삶의 의미를 되짚는 다짐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은 가톨릭 3대 순례지 중 하나로, 야고보의 유해가 안치된 곳으로 대성당의 건축 양식과 내부 장식 등은 순례자에게 특별한 감동을 준다. 그곳에 매일 정오에 드리는 순례자를 위한 미사가 있다. 순례자들을 환영하고, 축복하는 특별한 예배에 특별한 감동을 주는 의식이 있다.
왜 거대한 향로를 만들었을까.
보타푸메이로(Botafumeiro)는 갈리시아 언어로 연기를 내뿜는 기구(incense spreader)라는 뜻이다. 라틴어 "fumus"에서 유래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향로 중 하나이다. 높이 1.6m, 무게 53kg, 숯 무게를 합치면 약 60kg이다. 황동(brass)으로 제작된 향로는 20m 높이의 천장에 매달려 있다. 이 향로는 성 야고보 축일(7월 25일), 부활절, 성탄절 등의 특별한 미사에만 사용된다. 특히 매일 정오에 드리는 순례자를 위한 미사(Pilgrim’s Mass)에 사용하기도 한다. 보타푸메이로를 사용하는 날은 성당 입구 게시판 또는 공식 사이트 공지에서 알 수 있다.
여덟 명의 사제 혹은 성가대원이 숯이 담긴 향로를 흔들면, 향로는 연기를 피우며 시속 약 60km의 속도로 궤적을 그리며 왕복한다. 순례자들의 기도와 찬송이 연기를 타고 하늘에 닿는다는 상징이다. 기도의 향이 하늘에 오른다는 성경 구절과 관련이 있다. 이 예식은 전통적으로 11세기경부터 순례자들을 위해 사용된 것으로 추정한다. 당시 순례자들은 오랜 여행으로, 위생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향을 피워서 소독과 정화를 한다는 의미였다. 원래는 16세기, 프랑스에서 제작한 은제 향로였지만, 1809년 나폴레옹 침입 당시 도난당했고, 현재 향로는 1851년에 제작되었다. 거대한 향로를 붙들고 있는 견고한 줄이 있다.
우리는 모두 흔들리면서 산다. 흔들린다고 위태로운 것은 아니다.
정오의 종소리가 울릴 때 순례자들은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고, 피로와 먼지를 털어내고 성당으로 들어선다. 미사는 라틴어로 진행되지만, 국적도, 언어도 다른 순례자들은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고, 누군가는 눈을 감고, 손을 모은다.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향로는 마치 춤을 추듯 흔들린다. 성당 내부는 연기와 향으로 자욱하다. 하늘과 인간이 닿는 정점. 흔들린다고 해서 모두가 위태로운 것은 아니다. 모든 흔들리는 것들은, 굳게 붙잡는 것이 있다. 하나로 묶고, 하나의 호흡, 하나의 기도를 흩날린다. 삶이 흔들리던 순간마다, 우리를 붙잡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모두 흔들리면서 살아가고, 견고해지며, 뜨겁게 사랑한다. 우리는 모두 길 위의 가련한 영혼이었다. 마음의 불안, 두려움, 후회도 함께 흔들리다가, 이내 연기의 춤사위처럼 사라진다.
*인용 : 너에게 묻는다, 연탄 한 장, 안도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편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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