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1 일요일 13일 차. 비야르멘테로 데 캄포스(villarmentero de campos)에서 레디고스(Redigos)까지
이동 거리 34.09km, 소요 시간 8시간. 흐리고 안개 그리고 비.
0112 월요일 14일 차. 레디고스(Redigos)에서 엘 부르고 라네로(El Brugo Ranero)까지.
이동 거리 35.45km, 소요 시간 8시간. 흐림 그리고 갑자기 비.




순례자들이 하룻밤 피곤한 몸을 누일 한 평의 공간, 소박하지만, 따뜻함이 배어있는 순례자 전용 숙소가 알베르게(Albergue)이다. 잠깐 머물다가 떠나는 쉼터로 충분하다. 단순히 잠을 자는 공간을 넘어서,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쉼과 다시 내일을 준비하는 충전이 이루어지는 곳. 어젯밤도 늦은 시간까지 앙겔과 로사와 인생을 이야기하고 순례길을 걷는 이유를 묻는다. 통증과 붓기가 있는 발목에 바를 연고를 내어주었다.
몸은 나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다. 천천히 가라고, 조금 쉬라고. 신발끈을 묶는 아침, 더는 전쟁터로 나서는 것처럼 비장하지 않았다. 내게 허락하신 길에서 미치도록 사랑하리라. 내가 놓쳤을 풍경에 대해 미련을 두지 말자. 내가 지나쳐버린 수녀원, 직접 목에 걸어주는 교감에 아쉬움을 두지 말자.
속도와 시간을 계산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미치도록 걷기만 했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발이 가는 대로 걸었다. 위로와 모험이 공존한다. 정작 딱 걸은 만큼 줄어드는 남은 거리. 아마도 평상시 빈 몸으로 걷던 속도와 똑같이 걸으려고 했을 때 통증이 시작된 것 같다. 몸의 속도가 마음의 속도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다. 몸은 저항한다. 다시 정강이에 통증이 느껴졌다. 정신이 몸을 지배한다는 말. 나의 속도에 몸이 적응한 것이 아니라, 내 몸에 맞춰 나의 길은 달라졌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을 걸으려면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 전쟁이 아니라, 잔잔하게 몸의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몸뚱이에 온 신경을 써야 한다. 숨을 고르고, 느리게 걷는 법을 터득한다. 쉴 수 있는 용기를 기도한다.
짧은 만남과 작별은 항상 아쉽다. 아무도 없는 새벽을 나서면 소리에 민감해진다. 닭 울음소리, 깊은 밤에도 쪽잠을 자는 염소의 울음. 까마귀 소리가 애처롭다. 별도, 달도, 일출도 볼 수 없는 안개 자욱한 아침에도 세상은 밝아 온다. 순례길의 겨울 풍경은 순례자들이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신비로운 선물이다.










까리온으로 가는 새벽은 세상이 모두 늑장을 부리는 일요일 아침. 마을을 벗어날 즈음, 한 사내가 모자를 벗고, 말을 건다. 카리온에서 무엇인가를 먹었느냐고 묻는다. 아마도 다음 마을까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레디고스로 가는 끝없는 평원에는 아무것도 없다. 마을도,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들판으로 나설 준비를 마쳐야 한다.




노란 이끼에 자신의 몸을 기꺼이 내어주는 겨울나무. 수확을 마친 겨울 들녘에 우두커니 남겨진 밀밭의 잔해. 순례길의 풍경은 매일이 다르다. 나의 겨울은 들풀에게로 간다. 생명을 잉태하고, 숨죽이며 잔뜩 웅크리며 사는 겨울 들녘. 세상에 잡초는 없다. 바람에 몸을 눕히고, 다시 일어서는 풀처럼 살았던 적이 있는가. 메세타 평원에는 바짝 마르고, 송두리째 꺾이고, 부서져도 여전히 초록은 살아 있다. 그들도 한 계절을 꽃으로 살았다. 말라 붙었다고. 이대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가까이 다가가야만 보이는 세상. 기꺼이 무릎을 꿇는 의식. 겨울 들녘에 피는 풀은 모두 꽃 피고, 푸르렀던 여름을 기억한다. 산다는 것은 뜨거웠던 계절을 기억하는 것. 꽃 피우고 푸르렀던 계절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겨울 들판처럼 잔뜩 몸을 웅크렸던 계절을 떠올린다. 함부로 죽었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그들도 한 때 꽃이었고, 뜨거웠으며, 찬란했던 계절이 있었다.
겨울 농부는 밭을 갈아엎고, 비를 부른다. 흙은 촉촉하고, 말랑해질 것이다. 그리고 햇볕과 바람에 널어 흙을 말린다. 농부는 겨울을 나는 새들을 위해 말린 옥수수를 길가에 뿌려 놓았다. 갑자기 빗방울이 쏟아진다. 마음이 급해지면, 걸음은 빨라진다. 순례길에서 처음 비를 맞았다. 우비를 쓰고, 방한 장갑을 꼈다. 들판에서는 비가 옆으로 내린다. 우비를 써도 왼쪽이 다 젖었다. 어쩌면 늘 젓가락질을 하고, 글씨를 쓰고, 공을 차던 오른쪽을 위한 배려였을까.





오전 6시 33분. 레디고스마을을 벗어난다. 시속 1킬로미터를 줄이면 보이는 세상. 속도를 늦췄을 때, 세상은 느리게 온다. 어쩌면 느리게 걷는 법을 아는 모든 것은 천천히 세상을 음미하고 사는지도 모른다.
메세타, 스페인어로 고원이라는 뜻. 직선의 까미노.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는 가우디의 말은 인간도 자연의 일부일 수밖에 없다는 역설. 자연 속에서 먼지와 같은 인간은 지평선이 닿는 들판 끝까지 미지의 세계를 향해 끝없이 나아갔을 것이다. 도로와 길과 농로는 불완전한 직선으로 이어진다. 소염 진통제를 먹었기 때문일까. 꿈결처럼 걷고 있다. 하얗게 서리가 내려앉는다.
불빛 하나 없는 들판에서 전등을 껐다. 야생의 짐승처럼 눈을 감아보라. 점점 흐릿한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오롯이 나만의 세상. 조용히 눈을 감으면 새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다. 들판에서 정결한 신부가 되어 사하군으로 가는 황톳길에서 판초우의를 깔고, 바닥에 누워 보라. 얼굴에 차갑게 가라앉는 서리의 감촉을 느껴보라. 캄캄한 밤하늘을 하염없이 응시해 보라.










사하군에서 순례길의 절반을 완주했다는 증명서를 받았다. 해냈다는 기쁨보다, 생각이 복잡해졌다. 나는 사하군에서 닳고, 구멍 난 장갑을 보냈다. 한 번도 쓰지 않은 빨래집게도 고이 보냈다. 그리고 정강이와 발목의 통증과 붓기에 바를 연고를 샀다. 내 삶에 세상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어서 저항했던 날들에 대해 염증처럼 곪아 터졌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오늘도 메세타 평원에는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지평선 너머 안개처럼 희미한 색깔을 만드는 들판. 다시 우비를 꺼내 입는다. 메세타 평원에서는 비와 바람을 예측할 수 없다. 순례길에서 삶의 마지막을 보냈던 이들은 그토록 꿈꿔왔던 길에서 맞을 그 순간을 예측했을까. 화려했던 날의 추억을 이 길 위에 묻고 싶었던 것일까. 비 내리는 날에는 메세타로 가라. 실컷 목놓아 울어 보라. 내 삶에 갑자기 다가웠던 모든 것을 추억하라.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디나 같다. 스페인 경찰들이 십여 대의 차량을 출동해서 단속을 한다. 차들은 숨죽이며 달린다. 순례자는 길 위에서 본능을 해결한다. 참을 만한 고통과 참을 수 없는 본능은 다르다. 과감히 교양을 포기해야 한다. 순례길에 순례자가 없다. 지나치는 차를 향해 괜스레 손을 흔든다. 오늘은 알베르게에도 순례자는 없다. 순례자의 뒷모습을 그린 벽화에 끌리는 이유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고 싶은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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