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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순간/산티아고 순례

산티아고 순례길, 첫날의 교감

by JOY's Story 2025. 12. 31.

2025년 12월 29일 인천공항에서 파리 드골 공항까지 14시간 15분 비행. 프랑스 파리, 한국과의 시차 8시간 그리고 파리에서 바욘까지 10시간, 약 800km. 아직 끝이 아닙니다. 또 바욘에서 생장까지 오전 8시 50분 기차로 출발, 9시 50분 도착. 공항에서, 기차역에서 대기 시간까지 꼬박 이틀이 걸린 프랑스를 가로지르는 여정.
파리의 지하철에서 소매치기를 주의하라는 말도, 도착하자마자 다른 세상의 언어와 환경에 적응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프랑스어도, 스페인어도 하나도 안 보이고, 안 들립니다. 발음이 정말 생소하기 때문에 같은 곳을 말해도, 완전 다른 도시로 들리는 마법. 낯선 언어, 낯선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야 하는데, 안 되는 영어로 무언가를 물어보면 불어로, 스페인어로 얘기해 줍니다. 나쁜 생각을 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면 좋겠습니다.


파리에서 생장까지, 창문도 없는 암막 같은 야간열차의 침대칸에서 레일 위를 미끄러지는 마찰음과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기적 소리에 잠을 이룰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이 먼 길을 나는 왜 그토록 뜨겁게 꿈꾸었을까요. 순례길을 준비하면서 매일 똑같은 꿈을 꾸고, 일을 하면서도, 사람들과 얘기를 하면서도 꿈을 꾸듯 살았던 시간들.

내 삶에 가장 많은 간이역을 지나쳤던 날.
살면서 14시간을 하늘 위에서 보낸 적이 있었을까요. 단 한 번이라도 기차에서 밤을 꼬박 새운 일이 있었던가요. 사는 동안 이토록 많은 시골 간이역을 지났던 적이 있을까요. 시골 간이역에서 내리는 사람들의 뒷모습에서 반가운 누군가에게 도착했다는 설렘이 느껴져서 복받쳤던 적이 있었을까요.


생장으로 가는 기차에서 드디어 창밖 풍경을 봅니다. 겨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지 못하는 아쉬움을 기차에서 달랬습니다. 바욘에서 생장으로 가는 기차는 오른쪽에 앉는 것을 추천합니다. 피레네 산맥에 이어졌을 산등성이, 양 떼 목장과 푸른 초원 위의 붉은 지붕의 하얀 집 풍경이 주는 위안을 교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철교를 달리고, 아직 야생화가 지지 않은 들판에 감동할 수 있어서입니다.  달리는 기차에 나뭇가지가 부딪히는 소리, 기찻길 옆에서 산다는 것은 온몸에 생채기를 내고, 고통을 견디었다는 말. 산다는 것은 누구나 생채기 하나쯤 죽을 만큼 고통스럽다 해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웃는다는 것.


생장 순례자 사무실 자원 봉사자의 슈퍼 이지 하다는 말은 준사기죄에 해당합니다. 헛된 희망을 품게 한 죄. 쉬운 까미노는 없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도로를 걸을 때는 빠르게 지나치는 차들이 죽을 만큼 위험하고, 아무도 없는 산길을 걸을 때는 옛날, 산적의 위험을 감수했을 순례자들의 눈물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바짝 말라버린 밤송이는 계절이, 색 바랜 노란 화살표는 세월의 흐름을 순례자에게 속삭입니다. 그 모든 순간과 교감하는 일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산티아고의 심장 박동과 숨결을 온몸으로 오롯이 견뎌내려고 합니다. 내 삶의 모든 감각을 그들과 온전히 묶는 일, 그것이 내가 걸어야 할 나만의 산티아고라는 생각에 전율하는 산티아고 첫날 밤입니다.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산티아고였을 순간을 애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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