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도 마지막 날과 2026년 첫날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다는 것.
산티아고 순례길 2일 차
최저 기온 -1 최고 1도, 흐린 뒤 맑음이라는 예보와는 달리 날씨가 다해 준 날.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에서 수비리(Zubiri)까지
약 21km, 5시간 소요.
산티아고 순례길 3일 차
수비리(Zubiri)에서 팜플로나(Pamplona)까지 약 20.5km, 4시간 소요.
저녁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나태주, 행복 전문.






순례길에서는 누구도 저녁에 돌아갈 집은 없습니다. 그러나 단 한 평 지친 몸을 누일 수 있는 침대와 바람을 막는 공간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알베르게는 순례자에게 허락한 그날의 행복의 결이 얼마나 부드럽고, 달콤한 것인지를 말해줍니다.








첫날의 해 뜨는 풍경을 보고 싶고, 맑은 날씨에 모두가 잠든 새벽 홀로 어스름한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1월의 첫날 순례길은 고요합니다. 아무도 없는 숲길을 걷는, 날 것의 감성. 오감을 깨우는 소리와 풍경에 끊임없이 가슴이 울컥입니다.
숲을 온통 그들만의 놀이터로 만드는 새들의 난장 소리, 묵직한 소울음과 무리를 견고하게 묶는 워낭소리. 낯섦을 경계하는 개가 짖는 소리, 장작을 쌓고, 겨울을 나는 이들이 풍기는 나무 타는 냄새, 낯선 이에게 내어주는 통나무 의자의 온기. 그리움은 소리와 냄새 그리고 온기로 가슴을 치는 것일까요.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남아 파르르 떨고 있는 겨울나무가 흔들리는 소리. 물살은 처음부터 바다를 꿈꾸지 않습니다. 작은 시내를 만들고, 절벽을 만나 속울음을 삼키며, 봄을 부르는 소리. 물살은 처음부터 바다를 꿈꾸지 않습니다. 숲길을 걷듯이 사뿐 거리며 흘러갈 뿐. 태풍을 만드는 건 바람이 아니라 섞이지 않는 온도일 뿐. 바람이 머무는 풍경에도 나는 비워야 할 것과 나를 채워야 할 것을 묻습니다. 내가 붙잡아야 할 것과 미련 없이 놓아야 할 것이 무엇이었는지. 지치고, 힘들 때,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따뜻한 밥 한 끼가 주는 위로.
202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그런데 새해는 아침부터 굶게 되는 것일까요. 팜플로나까지 가는 길에 어떤 바도, 레스토랑도 연 곳이 없습니다. 한 명의 순례자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11시 넘어서 문을 연 Bar가 어찌나 반갑던지요. Bar El Pleno. 뜨거운 커피 한 잔이 이토록 울컥한 것이었던가요. 따뜻한 또르띠야 한 조각이 이렇게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음식인 줄 미처 몰랐습니다. 4유로의 행복.
굶주리고, 지친 몸을 끌고 가게 문을 여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습니다. 꽁꽁 언 손으로 쥔 포크에서 떠 올리는 것은 육체의 허기가 아닌 마음의 허기를 채우는 따뜻한 위로였습니다. 따뜻한 음식이 내어 준 가슴 뜨거운 환대였습니다.






진정한 교감.
멀리 보이는 대도시를 보는 순간, 오늘 내가 머무를 도시에 왔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도시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버즘나무로 검색되는 신기하게 생긴 가로수. 뿌리가 서로 다른 나무들이 마치 서로 기대고, 안아주듯 가지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서로의 머리를 묶는 것처럼 떨어질 수 없는 관계를 맺는 풍경입니다.
진정한 교감은 서로를 하나로 묶는 것. 다르기 때문에 타인이 아닌, 같이 한 세월을 추억하는 법을 안다는 것.
아침에 짐을 싸고, 숙소에 도착하면 다시 짐을 풀고, 다시 걷고, 먹고, 자는 일상. 특별한 일이 없는 순례길의 행복은 평범한 일상의 반복입니다.
나는 어떤 행복을 찾으며 살았던 것일까요.
바쁘고, 허황스럽던 날들. 요란한 곳을 향하고, 어지러움에 취했던 순간들. 순례길에서 내가 놓쳤던 행복의 의미를 묻습니다.




행복은 가슴으로 옵니다. 끊임없이 울컥한 감정이 물결처럼 흐릅니다. 빛바랜 노란 화살표가 주는 안도. 투박하게 생긴 사내가 길을 잃고 주저하는 순례자의 모습에 창문을 열고, 손짓으로 나아갈 길을 가리키는 정겨움. 지저분한 도시를 거센 물살로 씻어내는 사내의 뒷모습마저 가슴에 맺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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