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3일. 산티안고 순례길 5일 차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에서 에스테야(Estella)까지 21.80km, 4시간 소요.
Albergue Hosteria de Curdidores 22유로
산티아고 6일 차. 에스테야(Estella)에서 로그로뇨(Rogrono)까지 49.50km, 9시간 40분 소요.
Albergue municipal de rogrono 10유로
순례길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은 사람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출발점, 생장에서 론세스바예스를 향하던 첫날, 우연처럼 동행을 만났고, 첫 숙소에서 중국, 스페인, 덴마크, 스페인 순례자들을 만났다. 매일 밤마다 따뜻한 한 끼를 나누고, 술잔을 비우며, 각자의 언어로 그날을 추억하는 법을 배운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정현종, 방문객 중에서
사람이 온다는 것, 한 사람의 일생을 마주하는 기적. 그토록 가슴 떨리는 일이 있을까. 아무리 붙잡아도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을 사람은 남는 법. 바람처럼, 강물처럼 흘러가도록 놓아야 할 것이 인연이다.
오늘 순례길에서 처음 동행을 떠나보냈고, 처음 순례길에서 생일을 맞는 순례자를 기념한다. 생살을 벤 것처럼 아렸고, 순례길에서 태어나 첫울음을 터트리던 순간을 지켜보는 것처럼 설렜다. 우리는 수많은 사연을 얘기하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사는 동안 내 삶을 두드렸던 사람들을 추억한다. 내 삶에 들어왔던 사람들을 떠올린다. 우리는 가족의 안녕을 얘기했고, 삶을 되짚었고, 미래를 꿈꿨다. 힘든 순간을 함께 했다는 공감. 내가 나아갈 길과 내가 걸어온 길을 안다는 것.









순례자들이 강을 건너다가 다치거나, 죽는 경우가 많아 순례자를 위해 건설했다는 여왕의 다리를 건너는 새벽. 혹시나 얼굴을 마주치면 먼 길을 떠나기로 했던 결심이 흔들리거나, 못내 아쉬운 작별이 익숙하지 않기에 서로 부둥켜안고 울컥 일 것 같아서 서둘러 숙소를 빠져나왔다. 언어가 다르고, 낯선 누군가를 가슴으로 끌어안는 일에 언제쯤 익숙해질까. 밤새도록 새근새근 코를 골고, 뒤척거리는 소음, 시차를 겪는 탓도 있을 터, 불면의 밤을 지새웠다. 몸이 기억하는 시간의 흐름은 새벽안개처럼 몽롱하다. 캄캄할 때 나와서, 해질 때 들어가는 것이 진정 산티아고 순례길인지를 묻는다. 동행을 남겨 두었다는 미안함과 결코 인연을 헛되게 하지 않겠다는 다짐.










걷는다는 것은 새로운 무엇인가를 마주하는 일.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는 설렘과 그리움은 한 사람의 우주를 대하는 일처럼 다채롭다. 언어가 다르고, 살아온 모든 순간이 다르다. 그러나 혼자 걷지만, 함께 걷는 길이 순례길이다. 사람 때문에 더 반짝거리고, 사람 때문에 눈물짓고, 사람 때문에 희망을 품는다. 까미노의 매력은 사람들의 웃음이다.
직업, 나이, 국적, 언어 아무것도 모르는 낯선 이가 아무 이유 없이 건네는 손길에 감동하기도 한다. 환한 웃음으로 물 한 모금, 과자 한 조각, 나무 지팡이 하나를 나눠줄 때 순례자는 가슴 찡한 전율을 느낀다. 순례길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은 사람이다. 누군가는 그 길에서 만나 결혼하고, 누군가는 지독한 그리움을 견딜 수 없어 다시 그 길을 걷는다. 힘든 순간을 함께 했다는 위로, 서로를 의지하며 헤쳐나갔던 인연에 대한 경외. 인종과 문화, 언어와 종교를 초월해서 이어진 유대와 공감은 한 인간을 비로소 순례자로 만드는 지도 모른다.










순례길의 속도는 단순히 발걸음의 속도가 빠르거나, 느림으로 계산할 수 없다. 언제 도착할지, 어디에 도착할지 계산법대로 진행되지도 않는다. 순례길은 인생의 축소판이다. 순례자들에게 길은 모두 미지의 세상이다. 언어와 문화가 다르고, 낯선 길 위에서, 세계 각국에서 온 낯선 사람들을 만난다. 한 번도 접하지 못한 상황을 만나기도 한다. 누군가는 앞서고, 누군가는 뒤처진다. 심장이 터질 듯이 나아갈 때가 있고, 목마르고, 주린 마음으로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다. 걷는 동안 삶의 무게와 호흡을 고스란히 마주한다. 흙의 감촉, 바람의 속삭임, 꽃의 춤사위와 새의 노래, 한 걸음, 한 걸음이 쌓여 나를 만드는 시간이다. 그 속도 자체가 순례다.
나의 속도가 너무 느려서 앞서간 인연을 놓치지 않기를 기도한다. 너무 빠르게 걷느라 지쳐서, 양 떼의 이동, 쏟아지는 별빛, 천년의 시간이 주는 울림에 소홀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때로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는 느림을 기도한다. 앞만 보고 살았던 날들에 대한 따뜻한 위로가 되기를. 뒤로 돌아서야만 비로소 보이는 풍경에 대한 전율.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힘들고 지친 내 삶에 주는 선물이 되길.
하루에 50km를 걷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살면서 한 번이라도 단번에 10시간을 걸어본 적이 있었던가. 아무도 없는 벌판에서 담배연기 흩날리던 사내의 뒷모습처럼 차량 맞다. 땀과 눈물 그리고 심장을 맞바꾼 여름은 지나버렸다. 올리브 나무 가지를 쳐내는 농부의 심장 박동과 숨결을 고스란히 느끼고 싶다. 겨울 가지치기는 봄을 준비하는 것. 새로운 싹을 틔우고. 튼실한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누군가를 추모하는 일은 세상을 전부 나눠 갖는 일이다. 뜨거운 연민, 온몸으로 같이 울어주는 일이다. 사냥이 끊이지 않는 들판에 누군가를 추모하는 돌탑을 쌓아두었다. 살육과 추모가 공존하는 곳, 세상은 그런 것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냐고 묻지 말고, 무엇을 위해 사과나무를 심느냐고 묻지 말라. 작은 바람에도 끊임없이 나부끼는 것이 인생이다.
아마도 누군가 길에 만든 의자의 고마움을 아는 사람은 순례자일 것이다. 신발을 벗고, 땀에 젖은 양말을 말린다. 산다는 는 것은 누군가의 쉼터가 되어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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