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차 1월 5일 월요일. 날씨 맑음, 바람, 최고 온도 1도
로그로뇨(Logrono)에서 나헤라(Najera)까지 30km, 6시간 소요.
8일 차 1월 6일 화요일. 최고 온도 2도. 흐림 이후에 눈.
나헤라(Najera)에서 벨로라도(Belorado)까지 45km, 소요 시간 9시간.
로그로뇨를 빠져나왔을 때 잊지 못할 풍경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달과 해가 공존하는 시간을 여행하는 것은 한 마을을 떠나보내고, 다른 마을로 들어서는 것. 마을을 지나가는 길은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 널어놓은 빨래며, 부서진 담벼락. 그들이 견뎌온 모진 삶이 짙게 배어있다.







나의 산티아고는 오롯이 혼자 견뎌내는 것이다. 길 위에서는 누구도 만나지 못한다. 앞서 간 순례자도, 따라오는 순례자도 아무도 없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아도 사람은 오지 않는다. 다만 숙소에 도착하면 늦게 도착하는 순례자들과 서로의 안녕을 묻는다.
길에서 만난 순례자는 자전거 순례자인 독일인 루카가 유일하다. 로그로뇨 입구까지 그는 자전거를 끌고 갔다. 우리는 예술을 이야기했고, 서로의 산티아고로 작별을 고했다. 달콤하고도 아릿한 고독. 혼자여서 외롭고, 혼자이기에 거침이 없다.



아침에 짐을 싸면서 손수건을 두고 왔다. 이미 돌이키기에는 먼 거리였다. 이것은 잃어버리는 것일까, 버리는 것
일까. 그렇게 삶의 무게는 하나씩 비워지기 시작한다. 첫날에는 수건을 잃어버렸고. 오늘은 손수건을 놓아 보냈다. 이제 나는 무엇으로 몸을 닦아야 하는 걸까. 순례자가 된다는 것은 꾸미지 않는, 날 것 그대로의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이제 아침에는 세수조차 하지 않고 길을 나선다. 자발적 벌거숭이가 되는 의식.




나헤라로 가는 길, 먼 길을 겁내지 않는 사람은 혼자서 사랑을 앓는다. 순례길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그새 600km 대가 깨졌고, 200킬로미터를 걷는 동안. 나바라를 통과했고, 리오하 지방의 포도밭에서 취한 듯 비틀거렸다. 언덕에는 포도밭이 끝없이 펼쳐져있다.
포도나무는 척박한 돌밭에서 자란다. 산다는 것은 돌멩이 하나쯤 품는 일이다. 포도나무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 돌멩이를 품고, 햇살과 바람을 껴안고 포도는 자란다. 붉은 땅, 비탈진 곳을 마다하지 않는다. 바람을 잉태하는 산맥을 향해 줄을 세우고 빛의 길을 만들어 낸다. 겨울에도 밭을 갈고, 포도나무 가지를 베어내고, 쓰러진 버팀목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 사진을 찍어도 되냐는 말에 포즈까지 잡는 농부의 따뜻한 웃음이 헛헛하다. 황량한 겨울 들판에서 농부는 사랑을 한다. 나는 그와 인생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농부는 세찬 바람에 부서진 표지판을 실로 꿰매듯 붙여놓는다. 한 병의 포도주는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바람의 언덕에 올라보라. 정상에서 세상을 보라. 언덕에서 바람을 막아 세우지 말라. 산을 넘으면 바다가 있다.








높은 곳에 오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풍경들이 있다. 벤토사(Ventosa)에서 나는 주저했다. 하늘만 쳐다보며 사는 꽃. 황금색 술잔을 닮은 금잔화. 한 달 동안 피어서 이별의 슬픔, 태양을 보지 못하는 고통을 견디며 피는 꽃. 금잔화는 밤에 꽃잎을 열지 않는다. 포도밭에는 아직 따지 않은 포도송이가 달려있다. 농부는 수확한 포도를 전부 따지 않는다. 겨울 순례자들이 지친 몸으로 마을 입구에 도착했을 때, 달콤한 고독에 취하도록 버려두는 것이다. 왜 이곳이 포도밭이 된 지를 금잔화는 알고 있다.
햇살과 바람, 두꺼운 옷을 벗자니 춥고, 입자니 덥다. 인간이 자연 앞에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라는 것을 실감한다. 얼굴이 시리고. 손은 꽁꽁 얼고, 배는 고프고, 콧물은 나고. 햇볕은 멈추라 하고, 바람은 가라 한다. 선택은 망설이지 않고, 거침없이 빠르고, 정확해야 한다. 평생 흘려야 할 콧물을 오늘 다 쏟았는지도 모른다. 추위와 배고픔보다 더 서러운 것이 콧물이다. 추위와 배고픔은 스스로 달랠 수 있다. 콧물은 무엇으로도 달랠 수 없다. 감정을 비집지 않고도 가슴을 서럽데 적신다. 묵묵히 바람을 견뎌야 한다.







동박박사 축일 퍼레이드 그리고 성당 미사
매일 값없이 행복을 산다는 것. 따뜻한 한 끼, 온정의 눈길과 손길. 우연처럼 마주치는 순간들. 나헤라에 사는 스페인 사람들이 전부 모인 것일까. 내 삶에 가장 뜨거웠고, 위대했던 축제의 밤. 동방박사 축일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서 생각도 못했는데, 정말 우연처럼 나헤라에서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다. 스페인 어린이들의 산타클로스는 어떤 선물을 들고 담장을 넘을까. 돈키호테의 고향 카스티야 라 만차 지방의 포도주에 취하는 밤이다. 산토도밍고 성당에서 무거운 배낭을 메고 축일 미사를 드리는 순간도. 내 삶에 기적 같은 순간은 언제나 우연이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첫눈을 맞으며.
눈 쌓인 새벽, 별의 길을 따라서 걷는다는 것은 빛나는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한 경외. 내 앞에는 언제나 밝은 별 하나가 있다. 아조프라(Azofra)의 일출은 빗살을 만들고, 세상을 온통 뜨겁게 한다.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봐야 한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걷는다는 것은 발자국을 남기는 일이다. 순례자의 발자국은 흐트러짐이 없다.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되, 놓치지 말아야 될 풍경 앞에는 주저하지 않고, 거침없이 길을 벗어난다. 벗어난 길에서 산토 도밍고를 내려다본다. 내가 걸었던 길을 누군가는 무작정 따라올 것이기 때문이다.
매일 배터리를 충전하고, 핸드폰과 시계 그리고 키보드와 헤드렌턴을 충전한다. 잠은 그런 것이다. 피로를 날려 보내고, 고독도, 사랑도 잠시 내려놓자. 옷이든, 신발이든 한번 벗으면, 다시 입고 싶지 않다. 그날의 수고를 견뎌 낸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하자. 흙먼지를 닦아내고, 빨래를 하고, 몸을 씻고, 그날을 비워내는 의식. 내가 짊어졌던 모든 것이 고맙다. 어느 것 하나 짐이 아닌 것은 없지만, 그들은 나를 꿋꿋이 지켰다. 배낭 무게를 줄이기 위해 짐을 싸고, 다시 풀기를 반복했던 시간에 대한 자책.
순례길을 걷다 보니 오늘에서야 배낭의 무게가 적응되었고, 거리가 읽혔다. 이제 멀리 보이는 마을에 안도하지 않는다. 마음의 거리와 물리적 거리는 다르다. 마음의 거리와 몸의 거리는 비례한다. 마음이 그렇다고 시키기 때문이다. 언덕에 닿으면 또 언덕이 나올 것이고, 그 언덕을 넘으면 마을이 보일 것이다. 그리고 가파른 비탈길이 나온다. 리오하 지방에서는 언덕을 올라야 보이고, 레온 지방에서는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 모퉁이를 돌아서야 비로소 보이는 세상이 있다. 동토를 걷더라도 마음만은 얼지 않아야 한다. 언덕을 넘어서고,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 모퉁이를 돌아서는 일. 다른 세상이 열린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비로소 보이는 희망.
육체를 혹사시키면 정신은 맑아진다. 야수 같은 숨을 토하고, 살아야겠다는, 무너지지 않겠다는 독기가 생긴다. 취한 듯 비틀거리고. 입술은 바짝 마르고, 뾰족한 돌을 밟을 때마다 잔인한 고통이 전해진다. 그러나 정신은 또렸하다.










죽으라는 법은 없다. 동방박사 축일에 문을 열어준 피자가게. 동네 사랑방처럼 술판을 벌이고, 카드놀이를 한다. 살면서 피자 한 판을 다 먹은 날이 있었던가. 어느 것 하나 내 삶과 연결되지 않은 것이 없는 길 위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지독한 그리움이 무엇인지 알 듯하다. 무엇인가 놓친 것 같은 허전한 감정이고, 채워지지 않는 결핍. 풀 한 포기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기도한다. 자신을 살피고,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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